"우리 회사 코인 맡아주세요"…디지털자산 수탁업체 찾는 IT·금융사

입력 2021-05-31 17:29   수정 2021-06-08 16:05


게임업체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는 보유하고 있던 1억원어치 암호화폐를 지난달 한국디지털자산수탁(KDAC)이라는 회사에 맡겼다. KDAC는 기업과 개인이 보유한 암호화폐를 안전하게 보관·운용해주는 ‘디지털자산 커스터디(수탁·custody)’ 전문업체다.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중견 정보기술(IT)업체 제이씨현시스템, 대체투자 전문 자산운용사 알파자산운용 등도 최근 KDAC와 암호화폐 위탁 계약을 맺었다. 김준홍 KDAC 대표는 “올초부터 대기업과 중소기업까지 다양한 법인에서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은행·증권사와 수탁 서비스 협업
신사업에 활용하기 위해 혹은 투자차익을 얻을 목적으로 암호화폐를 보유하는 기업이 늘면서 디지털자산 수탁업이 주목받고 있다. 게임업체 위메이드는 지난달 또 다른 커스터디 회사인 한국디지털에셋(KODA)에 ‘1호 고객’으로 가입했다. 다날핀테크, 코인플러그 등은 암호화폐거래소 지닥이 운영하는 기업용 수탁 서비스를 이용 중이다.

눈에 띄는 대목은 전통 금융회사가 블록체인업계와 손잡고 이 사업에 발을 담그고 있다는 점이다. KDAC는 코빗, 블로코, 페어스퀘어랩이 지난해 세운 회사인데, 올초 신한은행이 투자자로 합류했다. KODA는 국민은행·해시드·해치랩스가 공동 설립했다. 문건기 KODA 대표는 “법인 대상 커스터디는 신뢰가 중요한 사업”이라며 “‘신뢰의 대명사’인 은행이 투자한 만큼 높은 수준의 자금세탁 방지, 내부통제 체계 등을 갖췄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했다. 증권업계에서는 SK증권이 지난 24일 지닥과 공동사업 협약을 맺고 디지털자산관리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했다.
수탁업체, 어떤 서비스 해주나
수탁업체들은 법인이 암호화폐 구매·보관·처분 과정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모든 문제에 ‘원스톱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보안성이 높다’는 암호화폐의 장점은 뒤집어 말하면 ‘관리가 어렵다’는 뜻도 된다. 하드웨어 형태의 지갑에 보관하다가 분실·도난당하거나 프라이빗 키(private key)를 잊어버리면 암호화폐를 찾을 수 없다. 수시로 가격이 변하는 암호화폐를 사고팔 시점을 비전문가가 판단하기도 만만치 않다. 수탁업체들은 이런 업무를 지원하는 동시에 법무·회계법인을 통해 법률·세무·회계 처리도 도와준다. 해외에서는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탁수수료를 0.1% 미만까지 낮춘 곳도 있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법인이 암호화폐를 보유하는 데 법적 제한은 없다. 정관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하면 되지만 상장 여부, 감사위원회 존재 여부 등 기업별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4대 대형 암호화폐거래소인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에서는 법인회원이 원화로 코인을 거래할 수 없다. 반면 수탁업체를 활용하면 첫 구매 때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회계상 암호화폐는 ‘자산’으로 처리한다. 기본적으로 무형자산이고 판매 목적으로 보유할 경우에 한해 재고자산(유동자산)으로 본다. 코인을 사서 보유만 한다면 세금은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보유하던 코인을 처분해 발생한 수익에 대해서는 법인세를 납부해야 한다.
테슬라 사례에서 보듯 ‘양날의 검’
암호화폐 전문가들은 법인 명의 암호화폐 보유의 장단점이 명확하다고 설명한다. 미국 마이크로스트래티지는 9만2079개, 테슬라는 4만3200개, 넥슨은 1717개의 비트코인을 샀다고 공시했다. 이들이 밝힌 매입 사유대로 ‘인플레이션 헤지’(물가 상승에 따른 손실 회피)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초저금리 시대에 현금을 쌓아둔 기업은 실질적으로 돈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포트폴리오 다변화 차원에서 일정 비율의 여유 자금을 환금성 높은 비트코인 등에 분산하는 전략을 고민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 폭락장에서 보듯 가격 변동성이 크고, 암호화폐에 대한 당국과 투자자의 곱지 않은 시선은 걸림돌로 꼽힌다. 무엇보다 기업가치가 코인 가격에 연동해 널뛰기하고 있다는 점이 최대 리스크다. 외신들은 테슬라가 비트코인 가격 급락으로 인해 2분기 실적에 투자 손상차손을 반영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업비트 지분을 6% 매입한 국내 한 증권사도 1분기 호실적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급락하기도 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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